-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기도 양평(楊平) 사람이다.
미주지역에서 조선의용대후원회(朝鮮義勇隊後援會)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워싱턴외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17년 중국 남경을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로 도항하였다. 그후 1930년 사회과학연구회를 결성하였다. 이러한 사회과학연구회에는 급진적인 한인 유학생과 청년들이 다수 참가하였으나 미국 정부 당국의 단속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그는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인들의 대일항전을 조국독립운동의 방도로 인식하고, 중국후원회를 조직하는데 앞장섰다. 그리하여 그는 뉴욕에서, 강영승(康永昇)은 시카고에서, 김강(金剛)은 로스엔젤레스에서 각각 중국후원회를 조직하여 중국인의 항일활동을 지원하였다.
1938년 중국에서 조선의용대가 결성되자, 미주에서도 이를 후원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 1939년 4월 의용대후원회가 뉴욕에서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등 미주 본토와 하와이, 쿠바, 멕시코 등에 지부가 설치되었다. 이때 그는 뉴욕의 한인들을 중심으로 조선의용대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배일선전과 군사후원금 모집을 위한 각종 대중집회와 기념대회를 개최하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40년 5월에는 대내외 공작의 통일을 위해 조선의용대후원회 연합회를 발족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는 1941년 4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에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연합회의 대표로 참가하여 미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연합에 힘을 쏟으며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그후 그는 중국후원회를 조선의용대 후원회로 개편하였으며, 1942년에는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미주총지부로 개편하여 미주 총지부 위원장직을 맡아 운영하였다. 그리고 1943년 9월 동당 기관지인「독립」의 출판을 위한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을 뿐 아니라 동지에 '조선민족혁명당과 우리의 해방운동'이라는 글을 기고하여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44년 임시정부의 워싱턴 외무위원회 위원 겸 상항대표단(桑港代表團) 단원으로 활동하며, 1945년 초 본격화된 OSS의 한반도 침투작전, 즉 냅코작전(Napko Project)에도 참가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國外容疑朝鮮人名簿(總督府警務局) 18面
- 大韓民國臨時政府議政院文書(國會圖書館) 827·851·858面
- 在美韓人50年史(金元容, 1959)
-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강만길) 304∼336面
- 독립(1944. 3. 1, 3. 8)
- 京鄕新聞(1995. 2. 2)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3卷 523面
- 米國在住要注意朝鮮人連名簿(總督府警察局, 1922. 9)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4卷 1023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