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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42308
성명
한자 朱世竹
이명 한베라, 한세죽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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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07 훈격 애족장
1919년 3월 함남(咸南) 함흥(咸興)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었고 1924년 5월 서울에서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 집행위원(執行委員)에 선임되었으며 1925년 1월 경성여자청년동맹(京城女子靑年同盟) 결성에 참여하여 활동하였고 1925년 4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중앙 후보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동년(同年) 11월 ‘제1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체포되어 동년(同年) 12월 석방되었으며 1926년 4월 정우회(政友會)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동년(同年) 6월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체포되어 동년(同年) 8월 석방되었고 1927년 5월 근우회(槿友會) 임시집행부(臨時執行部) 사찰(査察)로 활동하였으며 1928년 8월 박헌영과 함께 소련으로 탈출하여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수학한 뒤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상해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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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주세죽은 1919년 3.1운동당시 함흥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1개월간 함흥경찰서에 수감된 바 있었다. 이후 서울에서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 등을 주도하며 여성운동을 이끄는 한편,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중앙 후보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의 핵심에 있었다. 일제는 이런 그를 ‘여자 사회주의자 중 가장 맹렬한 자’로 평가하며 ‘요시찰인물’로 감시하고 있었다.

1924년 5월 서울에서 사회주의 여성단체 여성동우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이듬해 1월 경성여자청년동맹 (京城女子靑年同盟) 결성을 주도했다. 4월 고려공산청년회에서 활동하다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25년 11월 ‘제1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남편 박헌영이 일경에 붙잡힌 후, 그 또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1926년 6월 주세죽은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던 일경에 다시 붙잡혔으나 2개월만에 풀려났다. 1927년 5월 근우회(槿友會) 임시집행부에서 활동하던 주세죽은 병보석으로 출감한 박헌영과 1928년 8월 블라디보스톡으로 탈출했다.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하여 1931년 졸업하였다.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중국 상해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하던 중, 박헌영이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자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소련에서도 주세죽은 ‘사회적 위험분자’로 낙인찍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하는 등 박해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469면
  • 이정박헌영일대기(역사비평사, 2004) 99·185~186·538~543면
  •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 警務局, 1934) 178면
  • 時代日報(1926. 6. 25, 7. 26)
  • 朱世竹 訊問調書(京城地方法院:1926. 8. 2)
  • 思想에 관한 情報(京城地方法院 편철문서), 京鍾警高秘 제13691-1호(1925. 12. 3)
  • 東亞日報(1925. 3. 5, 12. 3, 12. 4, 1926. 7. 23, 8. 22)
  • 朝鮮日報(1926. 6. 25)
  • 검찰행정사무에 관한 기록(국내 항일운동자료) (1), 京鍾警高秘 제5577호(1924. 5. 10)
  • 1934~1938(스탈린시대) 정치탄압 고려인희생자들(모스크바 2002) 2권 114·141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주세죽 한베라(Xaн Bepa), 한세죽 함경남도 함흥(咸興) 제1·2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
본문
1899년 6월 7일 함경남도(咸鏡南道) 함흥부(咸興府) 함흥면(咸興面) 상리(上里)출신이며, 이명은 한베라(Xaн Bepa), 한세죽이다. 1920년대 대표적인 여성 사회주의 지식인으로서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와 경성여자청년동맹(京城女子靑年同盟)을 발기하였고,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중앙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27년에는 근우회를 주도적으로 결성하였다. 이후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재건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학창시절 함흥 영생여학교(永生女學校) 고등과에서 2년간 수학하였고, 함흥에서 1919년 3ㆍ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함흥경찰서에 한달간 붙잡히게 되었다. 1921년 4월에는 상하이(上海)로 가서 안정씨여학교(晏鼎氏女學校)에 입학하였고, 영어와 피아노를 배운 후 1922년 5월 귀국하였다. 1924년 5월 사회주의 여성단체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를 발기하고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사회주의자 박헌영(朴憲永)과 결혼하였다. 1925년 1월 21일 밤 경성여자청년동맹(京城女子靑年同盟) 결성에 참여하여 강령 및 규약을 기초하고 박정덕(朴貞德) 등과 함께 집행위원이 되었다. 같은 해 2월 전조선 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으로 선정되었고, 4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결성대회에서 중앙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이 무렵 1925년 4월 김재봉(金在鳳)을 책임비서로 하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입당하여 경성부 제6야체이카, 여성부 프랙션에 배속되었고, 박헌영 또한 비밀결사로서 고려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제1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혀 신의주경찰서(新義州警察署)에서 취조받고 12월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1926년 6월 6.10만세운동으로 인해 세력이 드러나 제2차 조선공산당이 와해된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혔으나, 8월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의해 다시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1927년 5월 27일 조선 여자의 공고한 단결을 도모하고 그 지위를 향상시킨다는 강령하에 여성운동 전선의 통제적 사명을 내건 근우회 창립대회에 참가하여 임시집행부 성원이 되었다. 그리고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모진 감옥 생활을 하던 박헌영을 보조하였고, 11월 병보석으로 출감하자 간호하였다. 일제는 한때 ‘여자 사회주의자 중 가장 맹렬한 자’로 평가하며 ‘요시찰인물’로 감시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강해지자 1928년 8월 박헌영과 함께 소련으로 탈출하였는데, 같은 해 11월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정치 망명가 숙소에서 거주하였고, 1929년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하여 1931년 졸업했다. 이후 1932년 1월 박헌영과 함께 상하이에 도착하여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종사하다가 1933년 7월 박헌영이 일본영사관 경찰에 붙잡힌 뒤 모스크바로 되돌아갔다. 1934년 김단야(金丹冶)와 재혼하였다. 그해 공산대학에 다시 입학하여 5개월간 수학한 후 외국인노동자출판부 조선 담당 편집원이 되었다. 1938년 일제 밀정 혐의로 소련 경찰에 연행되어 취조받은 뒤, 모스크바 추방령을 받았다. 이후 카자흐공화국 크질오르다에 유배되어 방적공으로 생활하였다. 소련에서도 ‘사회적 위험분자’로 낙인찍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하는 등 박해를 받았다. 1946년 해방된 조국으로 귀환시켜줄 것을 소련 당국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외소재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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