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평안남도 순천(順川) 사람이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불교(佛敎)를 대승적(大乘的) 불교로 개혁하여 불교의 신앙으로 강고한 정신력과 경제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1940년 12월 1일부터 1943년 6월 20일까지 대구(大邱)와 일본 동경(東京)에서 동지 현영만(玄泳晩)·김병욱(金炳旭)·강증룡(姜曾龍) 등과 함께 그 결사체로서 무우원(無憂園)을 조직하여 동지규합에 진력하였다. 또한 민족의식을 앙양하기 위하여 「무우원(無憂園)」, 「문장연구(文章硏究)」, 「글공부」라는 책자를 편찬 인쇄하여 동지들을 배포했으며, 경비조달을 위해 「저원(貯円)」이란 명목으로 100원을 목표로 200원을 적립하였다.
1943년 6월에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44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44. 6. 16 대구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