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568
성명
한자 曺京煥
이명 曺準煥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63 훈격 독립장

관련정보


2018년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1. 1907년 12월 광주(光州), 함평(咸平) 등지에서 이원오(李元五), 김동수(金東洙), 양상기(梁相基) 등과 의병을 일으켜 김태원(金泰元)좌익장(左翊將)이 됨

2. 1907년 12월 14일 함평성문(咸平城門)을 급습하고 학포마병대(鶴浦馬兵隊)를 습격하는 동시에 김박사(金博士), 이진사(李進士) 등과 합세하여 선봉장이 됨

3. 1907년 12월 18일 전남 장성(全南長城) 부근에서 부하 200명과 더불어 일헌(日憲)교전

4. 1907년 12월 27일 영광군사창(靈光郡社倉) 습격 군량확보

5. 1908년 호남창의대장(湖南倡義大將)이라 칭하고 각지 향교(鄕校)에 수차 독립격문을 발송하여 독립의식을 고취시킴

6. 1908년 1월 1일 일 길전부대(日吉田部隊)교전하여 길전(吉田)포살(砲殺)하고 적군수명을 격살하는 동시에 광주(光州), 나주(羅州), 장성(長城), 함평(咸平) 등지 기타 수차 일군(日軍)교전

7. 1908년 11월 25일 전해산(全海山), 유완요(柳完堯), 전효군(全孝軍)과 연합하여 일군교전 (數) 10명을 사살함

8. 1909년 1월 10일 광주군 소지면 어등산(光州郡所旨面魚登山)에서 일병(日兵)교전중 33세를 일기로 전사함 (공적서에는 1908. 12. 19)

( 폭도사자료(暴徒史資料) 27호, 폭도편책(暴徒編冊) 28호((續)) 38호, 폭도통계자료(暴徒統計資料) 160, 폭도토벌지(暴徒討伐誌)(407) 252,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p.60)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 일군(日軍) : 일제 군대.
  • 교전(交戰) : 서로 병력을 가지고 전쟁을 함.
  • 사살(射殺) : 활이나 총 따위로 쏘아 죽임.
  •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9세부터 22세까지 유학을 수학하였는데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의 문인이었다.

1900년부터 전국 명산대천을 순례하여 산세와 지리를 답사 기록하고 스스로 호를 대천이라 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군이 일제에 의하여 강제 해산되자 통분함을 금치 못하고, 1907년 12월 초순 광주·함평 등지에서 이원오(李元五)·김동수(金東洙)·양상기(梁相基) 등과 의병을 일으켜, 10일 함평으로 죽봉 김태원(竹峯 金泰元)을 방문 상의하고, 13일 김태원과 함께 거의기병하였다. 조경환은 좌익장(左翼將)이 되어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14일 새벽 함평성내의 일군을 급습하여 적 수십 명을 생포하고 총 18정 및 다수의 화약과 탄환을 노획하였다.

그날밤 학포(鶴浦)에 주둔한 일본의 기병대를 습격하고 함평향교 뒷산으로 퇴각하여 전현감 이용안(李龍安)의 집에서 휴식하도록 하였다. 그후 마치 주점(馬峙 酒店)에서 김박사의진, 이진사의진과 합세하고 자신은 선봉장이 되었다.

17일에 함평의 동촌리(東村里)에 사는 임용여(林龍汝)의 집에서 김박사의 의진이 일군에게 포위 당하여 악전고투하므로 조경환은 의병 약간 명을 인솔하여 응원공격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7일 영광군 사창(靈光郡 社倉)을 습격하고 군량을 확보하였다.

1908년 1월 1일 적의 동태를 미리 파악하고 창평(昌平)의 무동촌(舞童村)에 잠복 대기하고 있다가 내습하는 일본헌병대를 맞아 싸워 대장 길전(吉田) 이하 수명을 포살하였다.

11월 장성(長城)의 낭월산(浪月山)에서 일대 격전을 전개하여 무수한 적을 무찔렀으나 아군도 4명의 중상자를 내었다.

3월 7일 영광의 토산(土山)에서 교전하였던 바 적이 예상 밖으로 다수의 증원병을 얻어 대항하므로 아군이 불리하게 되었다. 이에 의려를 불갑사(佛甲寺)로 후퇴시키고 부상병을 치료케하며 무기를 수선하였다. 25일에는 의진을 2대로 나누어 그 일대는 김태원이 영솔하여 천곡(天谷)으로 갔고, 조경환은 나머지를 영솔하고 광산군 어등산(魚登山)으로 가서 적과 교전하였다.

이날 전투에서 두 부대가 모두 참패를 당하고 김태원이 중상을 입었으므로 함께 함평의 당산촌(堂山村) 나평집(羅平集)의 집에 은신하였다.

4월 8일부터 함평의 지월치(芝月峙) 표군팔(表君八)의 집에서 전략수립을 위하여 막료회의를 주재하였으며, 5월 5일에 이르러 전해산(全海山)이 의진을 영솔하여 왔다.

6월 2일 영산으로 가서 동곡(桐谷)에서 이대왕(李大旺)의 의진과 합세하여 적의 포수 1명을 생포하였다.

6월 30일 전해산과 다시 의병을 나누어 동각리(東角里) 유군발(柳君跋)의 집에 묵으면서 의진을 정비하고 있던 중 김태원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9월 7일 그의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그후 중의에 따라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호남창의대장이라 칭하고 각지 향교에 수차 격문을 발송하여 항일사상을 고취시키는 한편 전군을 영솔하고 흑석리(黑石里)로 가서 경찰대와 교전한 결과 대장 정득주(鄭得柱) 이하 수명을 생포하였다.

10월 2일 오수산(烏首山)에서 교전하여 일병 수명을 무찔렀고, 7일에는 함평의 석문(石門)에서 적 수십 명을 무찔렀다. 29일에는 장성(長城)의 고산(高山)에서 휴군하던 중 대치(大峙)에서 전해산의 의진이 적과 교전 중이라는 정보에 접하고 의진을 이끌고 대치로 가서 응원하여 적 수십 명을 생포하였다.

11월 8일 광주의 동촌(東村)에서 적과 접전하였으며, 11월 25일 전해산 의진의 유완요(柳完堯)와 김여효(金汝孝)의 세 의진이 합진하여 적과 교전 끝에 적 수십 명을 무찔렀다.

이와 같이 연전연승하던 의진은 1908년 음력 12월 19일 구정을 앞두고 과세차 의병을 귀향시키고 몇 명의 막료와 함께 어등산 사동(寺洞)에 은신하고 있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일본 헌병대의 급습을 받아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기증 받은 백마를 타고 이리저리 내달으며 일병을 무찌르던 중 적탄이 오른쪽 가슴에 연달아 두 발이 명중되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깨달은 조경환은 목에 걸린 망원경을 벗어 놓고 왼쪽 품안에 깊이 간직하였던 의진의 명단은 꺼내 불사른 후 조용히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기려수필 13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594·617·61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373∼433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조경환 호 : 대천(大川), 아명 : 정거(丁擧), 본명 : 준환(準煥) 전남 광주(光州) 후기의병
본문
1876년 2월 14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호는 대천(大川), 아명은 정거(丁擧), 본명은 준환(準煥)이다. 경환(京煥)은 의병에 투신하면서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1908년 중반부터 1909년 초까지 광주와 나주를 중심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어려서부터 22세까지 한학을 배우다가 뜻한 바 있어 전국의 명산대천을 돌아보며 기록하였다. 1906년 전북 태인(泰仁)에서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崔益鉉)의 영향을 받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심각하게 걱정하던 열혈적인 우국지사였다. 1907년 7월 고종의 강제 퇴위 및 정미조약의 체결로 국권이 날로 침탈되자 의병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같은 해 10월 기삼연(奇參衍)의 주도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가 결성되자 김준(金準) 등과 합류하였다. 11월 하순 전남 장성(長城)의 약사암(藥師庵)에서 의진(義陳)을 나눌 때 김준의 의진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김준 의진의 선봉장(혹은 좌익장)으로 전남 함평읍(咸平邑) 공격, 창평의 무동촌(茂洞村) 전투, 장성 낭월산(朗月山) 전투 등의 항일투쟁을 수행하였다. 1908년 4월 25일 김준 의병장이 광주 어등산(魚登山)에서 순국하자, 흩어진 의병을 수습하였다. 이 무렵 전북에서 남하한 전해산(全海山)과 함께 활동했던 오성술(吳成述)과 광주의 용진산(聳珍山)에서 만나 의병항쟁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후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같은 해 [음] 7월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의진을 나누어 각자 독자적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되 연합전선을 형성하기로 했다. 그가 이끌었던 의진의 주요 구성원은 도통장 박용식(朴鏞植), 선봉장 김원국(金元國), 도포장 김원범(金元範), 총독장(摠督將) 박규봉(朴圭奉), 좌익장 이원오(李元吾)·김동수(金東洙), 일초십장(一哨什長) 이동언(李東彦), 3초십장 원재룡(元在龍), 4초십장 서경수(徐景洙), 동몽집사(童蒙執事) 김복동(金福東)·곽진일(郭鎭一)·조찬성(趙贊成) 등이다. 약 1백 명 내외의 규모를 9개 부대로 편성하여 광주·함평·영광·장성·담양 등지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주로 전해산 및 김여회(金汝會) 의진과 연합하여 일제 군경과 싸웠다. 1908년 12월 중순 장성 월암(月岩)에서 전해산 의진과 연합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했는데, 이때 약 200명의 규모였다. 당시 이들이 보유한 무기는 30년식 일본총 4정, 권총 6정, 한병총 12정, 천보총 8정, 개조화승총 약 60정, 쌍안경 1 등이었다. 전해산 의진과 긴밀하게 연락하며 연합전선을 형성해서 일제 군경과 맞서 싸웠다. 이들은 광주·나주·영광·장성 등을 중심으로 강고한 산병호(散兵壕)를 구축하고 있었다. 당시 전남지역의 11개 의진이 「호남동의단(湖南同義團)」이라는 이름으로 연합전선을 형성할 때 그는 제4진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음] 12월 하순 설을 쇠기 위해 일부 부하를 귀향시키고, 나머지 부하 약 50명을 이끌고 광주의 어등산 절골에 주둔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탐지한 일제 수비대는 1909년 1월 10일 정오 무렵 이들을 세 방향에서 포위, 공격하였다. 대숲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던 이들은 2시간동안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20명이 전사하고 10명이 체포되었다. 일제 수비대가 소모한 탄환이 996발이나 되었다. 이때 조경환도 전사했는데, 일제는 그를, “고(故) 거괴(巨魁) 김태원(金泰元)의 부장(部將)으로, 태원의 사후 독립해서 광주군(光州郡)을 본영으로 각지를 횡행하였고, 그 세력이 한창일 때는 부하가 1백 명이나 되었다. 심남일(沈南一)·전해산(全海山) 등의 거괴와 서로 도우면서 가끔 관헌과 싸웠으나 여기서 전몰(戰歿)”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 피탈된 무기로는 30년식 기병·보병총 2정, 5연발 엽총 1정, 화승총 12정이나 되었다. 일제가 의병으로 빼앗은 엽총은 광주의 선교사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30년식 보병총은 창평 무동촌 전투에서 노획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선봉장 김원국이 흩어진 의병을 수습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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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서울현충원 서울특별시 동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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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소 어등산 호남의병 전투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2 기타 여래사 순국선열봉안소 및 순국선열위령탑 서울특별시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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