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여름 일본 (日本) 동경 (東京) 조선노동동맹회 결성에 참여하여 실행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25년 일월회 (一月會) 에 가입했으며 1926년 11월 정우회 (正友會) 상무집행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1927. 4. 15 일본 (日本) 동경 (東京) 에서 조선공산당 (朝鮮共産黨) 일본부를 조직, 검사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27년 12월 초순에 당대회건의안작성 간부회가 개최되었을 때 일본부 대표로 출석하여 그 결의를 귀국할 때 조선공산당 간부에 제출하는 등 활동하다가 1928년 2월 체포되어 징역 3년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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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22년 여름 일본 도쿄[東京]에서 조선노동동맹회(朝鮮勞動同盟會) 결성에 참여하여 실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5·1926년에는 일월회(一月會) 회원과 정우회(正友會) 상무집행위원으로 민족 계몽과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였다. 당시 일월회는 사회주의운동세력의 통일을 주장하면서, 그 활동 범위를 국내로 넓혀 나갔다. 이때 그는 일본에서 조선공산당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7년 4월에는 도쿄에서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일본부(日本部)를 조직하고 검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활동하다가, 1928년 2월 조선공산당이 발각될 때 체포되었다. 체포 후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으며, 총 4년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1986) 3권 220·222·250면
- 三千里(1931. 4. 1) 제14호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28면
- 東亞日報(1928. 2. 5, 1932. 7. 10)
- 中外日報(1929.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