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김상종(金象鍾) 의진의 소모장(召募將)으로 경북 의성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동학농민군을 탄압하면서 한국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시켜 갔다. 그러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개입으로 말미암아 국제정세가 변화하면서 친일세력이 약화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일제는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급기야 1895년 8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해 11월 일제와 친일정권에 의해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우리 민족은 이에 반발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 때의 의병은 유생이 주체가 되었으므로 그 사상적 배경도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이념으로 하고 존왕적(尊王的)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 때 영남지방에서 의병 봉기는 태봉(胎峰) 전투에서 실패한 후, 안동부를 중심으로 그 일대의 의병장들이 다시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하여 전투를 준비하였다. 그중 안동 의병진은 김도화(金道和)를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병력을 보충하여 안동읍을 중심으로 진영을 설치하였다.
이런 때 경북 의성지방에서는 김상종을 중심으로 의병이 거의하였다. 김상종 의진에서 김수욱은 소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그외 중군장에 권대직(權大稷), 선봉장에 김수담(金壽聃), 관향장에 김수협(金壽莢) 등이 있었다. 또한 이 시기 경북지역에는 의성지방 뿐만 아니라 영양의 김도현(金道鉉), 진보의 허 훈(許薰) 등이 의병을 일으켜 호응하고 있었다.
김상종 의진은 황산(黃山)을 거점으로 활약하였으나 1896년 3월 29일 일본군과 접전하여 그들의 우세한 화력 앞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분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선봉장 김수담과 관향장 김수협 등이 전사, 순국하였다. 그러나 김상종 의진은 을미의병이 종결된 이후 「을사륵약(乙巳勒約)」의 내용이 알려지자 각지의 유림들에 통문을 보내는 등 재궐기를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문소의 얼(의성군 교육청, 1979) 56∼58면
- 조선환여승람(보문사, 1934) 27면
- 의원(의성항일독립운동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 1991) 13·27면
- 義얼의 메아리(박인걸, 1983) 58면
- 의성군지(의성군지편찬위원회, 1987) 106면
- 항일독립운동의성군자료집(의성문화원, 1992) 4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