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남 산청(山淸) 사람이다.
1932년 9월 13일 경남 의령군(宜寧郡) 대의보통학교(大義普通學校) 고사로 재직 중 김두영(金斗榮)·정두명(鄭斗明)·이순의(李順義) 등 교사들과 함께 일제의 식민교육에 대항하기 위해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무렵 일제는 대륙 침략의 야욕을 불사르면서 만주를 불법 침공한 후 괴뢰만주국(傀儡滿洲國)을 세우고, 한국을 준전시체제로 몰아가면서 탄압을 강화시켜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산업별 노동조합의 결성이 독립 달성을 위한 기초로 판단하고, 뜻이 맞는 교원들과 힘을 합하여 교육노동협의회(敎育勞動協議會)를 결성하였으며, 동지 포섭에 힘을 쏟아 조직을 확대해 갔다. 그리하여 비밀결사의 성원은 30여 명에 달하였고, 이들은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기울였다.
이의 일환으로 1933년 5월 22일 대의보통학교 학생 60명과 동민을 인솔하여 산위에 올라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됨에 따라 일경에 붙잡혀 1934년 7월 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1933. 12. 12, 1934. 4. 22, 5. 31, 6. 28)
- 판결문(1934. 7. 5. 부산지방법원)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