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1913년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의 일원으로 1914년 4월 서울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였다.
독립의군부는 1913년 9월 임병찬(林炳瓚)·이용순(李溶淳)·정용규(田鎔圭) 등 유생이나 의병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서울에 독립의군부 중앙순무총장(中央巡撫總將)을 두고, 각 도에 도순무총장(道巡撫總將), 각 군에서는 군수(郡守), 면에는 향장(鄕長)을 두어 내각 총리대신 총독 이하 대소관헌에게 국권반환요구서를 내고, 일본관헌에게 한국통치의 곤란함을 알게 할 뿐 아니라 외국에 대해서 한인이 일본의 통치에 굴복하지 않고 있음을 밝히며, 국민에 대하여는 국권회복의 여론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이용철은 1914년 4월 경, 독립의군부의 일원으로 동지들을 규합하는 한편 이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 중,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5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상인(傷人) 죄를 적용하여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3일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179面
- 豫審終結決定書(1915. 3. 4. 京城地方法院)
- 判決文(1915. 7. 23. 京城覆審法院)
- 受刑者索引簿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5卷 160面
- 判決文(1915. 5. 12. 京城地方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