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황해도 서흥(瑞興) 사람이다. 1919년 4월 4일 김응률(金應律)·김제원(金濟元)·박병건(朴炳建) 등과 함께 내덕면 하석리(內德面下石里)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곳은 평산군(平山郡)과 봉산군(鳳山郡)이 인접해 있는 곳으로서, 각지의 만세운동과 관련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는 이날 150여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행진을 하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이해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49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6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650·65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