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1943년 9월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을 졸업 후 휘문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는 경성제국대학 재학 시 한국인을 멸시하는 일본인에 대하여 저항의식을 길러 왔으며, 내선일체(內鮮一體)에 대하여 적극 반대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했던 그는 내선일체의 허구성에 대하여 한국과 일본은 민족성이 다르므로 융화가 어려울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일본 민족에 비해 한국 민족이 우수함을 강조하면서 내선일체를 거부하였다.
또한 그는 태평양전쟁의 전황을 주시하면서 일제의 패전을 예견하는 한편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숙지시키고 힘을 합하여 일제의 패전을 독립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였다.
그러던 중 발각되어 일경에 붙잡힌 그는 1945년 4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15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판결문(1945. 4. 9 경성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