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 출생이다. 1916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폈다. 대한광복회는 1915년 7월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일부 인사들과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이 제휴하여 결성한 혁명단체였다. 동회는 군자금 모집을 위해 전국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포고문을 발송했는데, 이때 그는 김한종(金漢鍾)·김경태(金敬泰)·이재덕(李在德)·김상준(金尙俊) 등의 동지와 함께 충청도 지방의 부호들에게 고시문·포고문 등을 발송하며 군자금 수합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중 대한광복회의 조직이 노출됨으로써 그는 일경에 붙잡혔으나 면소판결을 받아 출옥하였다. 그후 북간도로 건너가 용정(龍井)의 대성학교(大成學校)에서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등 항일투쟁을 계속하였으며 다시 귀국하여 1924년 6월 경남 합천(陜川)에서 군자금 수합 활동을 펴던 중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요사 181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2권 439·443·444면
- 예심종결결정서(1918. 10. 19 공주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