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남 산청(山淸) 사람이다.
1919년 3월 22일 산청군 산청읍 장날에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동경유학생인 오명진(吳明鎭)이 귀국하여 '독립선언서'를 산청으로 숨겨 들어오면서 추진되었다. 오명진은 우선 민영길(閔泳吉)·신영희(申永熙) 등을 규합하고, 3월 18일 독립만세운동에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세하며 결사대(決死隊)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3월 22일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그 준비를 서둘러 진행시켰다.
이들은 산청면사무소 등사판을 몰래 가져와 2일 동안 '독립선언서' 및 '결의서' 2,000여 매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일경에게 발각되어 애써 준비한 독립선언서를 몰수당했을 뿐만 아니라 주도인물들도 붙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거사 당일인 3월 22일, 산청읍 장터에는 군중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정오가 되자 군중의 만세소리가 터져나왔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던 박응양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군중의 행진을 주도해 나갔다. 그러자 일본 헌병과 긴급 연락을 받은 진주 일군 수비대 수십명은 시위군중에게 총탄을 퍼붓고 총검을 휘두르며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였다. 이때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박응양은 일경의 군도(軍刀)에 오른쪽 귀와 팔이 절단되는 참상을 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有功者功績確認書(1997. 5. 22, 今西面長)
- 抗日獨立有功者追慕碑(1995. 3. 1)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16∼318面
- 釜山·慶南 3·1運動史(3·1同志會, 1979) 778面
- 居昌新聞(1994.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