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음력 7월 전북 (全北) 정읍 (井邑) 에서 김언수 (金彦洙) 가 창시한 신흥종교에 입교하였고, 1940년 5월 11일 동지에서 김언수 (金彦洙) 등과 함께 조선 독립 (朝鮮獨立) 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건국단 (朝鮮建國團) ’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강원도 책임자 (江原道責任者) 가 되어 동지 획득 (同志獲得) 등 동단의 조직확장 및 목적수행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42년 9월 22일 징역 5년(미결구류 (未決拘留) 150일 통산 (通算) )을 받고 옥고 를 치르던 중 1943년 5월 14일 옥중 사망 (獄中死亡)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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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조선건국단(朝鮮建國團)’을 조직하고, 강원도 책임자가 되어 동지와 독립자금을 모집하였다.
신영화는 1938년 전북 정읍(井邑)에서 김언수(金彦洙)가 창시한 신흥종교에 입교하였다. 김언수가 창시한 이 종교는 최수운의 시천교와 강증산의 증산교 두 교의에 의거하여 유불선 3교를 통합한 것이었다.
1940년 5월 10일, 신영화는 김언수의 초청으로 정읍군 덕천면(德川面) 신월리(新月里)에서 교인들과 모임을 가졌다. 김언수는 “우리 교도의 손으로 조선을 독립시켜야할 시기가 도래하였고, 그 시기는 1942년 음력 2월 21일로써, 일본·중국 및 서양제국도 우리나라의 지배하에 들어온다”고 말하고 동지 규합에 노력하자고 하였다. 신영화는 이에 찬동하여 강원도 책임자가 되었다.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동지 규합·세부조직 결성·자금 조달 등의 활동을 하였다.
신영화는 1940년 12월에 강원도 울진군·평창군·영월군을 다니며,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영월경찰서에서 취조를 받고, 1942년 9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미결구류 150일 통산)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다 1943년 5월 14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囑託書(寧越警察署 司法警察官 江原道警部 水谷康次郞:1941. 1. 24)(刑事第1審訴訟記錄:1942年 刑 第3433號, 京城地方法院)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별집 4권 548면
- 前 普天敎徒의 朝鮮獨立을 目的으로 하는 不穩結社 ‘朝鮮建國團’ 事件에 關한 件(寧越警察署)(刑事第1審訴訟記錄:1941年 刑 第519號, 京城地方法院 原州支廳)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42.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