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17일부터 19일까지 경북 의성군 안평면(安平面)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안평면에서의 만세시위는 기독교도인 강희석(姜熙碩)·김복식(金福植)·정금동(丁今同) 등이 주도하여 점곡면(點谷面)의 송내동교회(松內洞敎會) 조사(助事) 권수백(權秀伯) 등과 연대를 이루며 추진해 갔다.
전응주는 강희석 등과 함께 교회를 중심한 인사 50여 명을 이끌고 3월 17일 밤 마을에 태극기를 게양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 후 전응주는 일경의 포위망을 피해 면내 창길동(倉吉洞)·삼춘(三春) 등의 각처를 시위행진하였고, 3월 19일에는 이웃의 봉양면(鳳陽面) 도리원(桃李院) 장날의 시위대에 합류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봉양면의 시위에서는 수천 명의 군중이 시위행렬을 이루었으며, 대구 80연대에서 동원된 일본군 1백여 명은 시위대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함으로써 권해운(權海雲)이 현장에서 절명 순국하였고, 10여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로써 시위군중은 해산되었고, 전응주는 일경의 추격을 받아 붙잡혔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19년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6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항일독립운동의성군자료집(의성문화원) 52·56·40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374·37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302∼13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