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전남 영광(靈光) 사람이다.
3·1운동 때 전남 영광면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서울에서 3·1운동의 소식을 접하면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직물공장(織物工場)에서 농민회 회원 및 청년회 회원, 학생들을 모아 태극기를 제작하고 선언서를 인쇄함으로써 만세시위 준비에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일제의 경계를 피하여 성공적으로 준비를 마칠 수 있었으며, 거사일인 3월 15일 오후 1시에 그가 경영하는 직물공장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시위에 참가한 군중은 1천여 명에 달했다.
그 후 독립 달성을 위한 강구책으로써 교육 방면에 힘을 쏟기로 결심하고 사재를 털어 1921년 9월 영광읍에 유치원을 설립하여 자라나는 어린 싹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한편 1923년 12월 사립학교 영광중학(靈光中學) 기성회의 총무를 맡으며 학교의 부흥을 도모했다.
일제의 압력으로 1926년 영광중학 기성회가 해체되자, 그는 사재(私財)를 내어 군서면(郡西面)에 교실 4칸의 본관과 부속건물 2동을 신축하여 정명학교(正明學校)를 설립하고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이 때 교장은 영광의 3·1운동을 주도하다가 옥고를 치른 바 있는 박태엽(朴泰燁)을 초빙하였다. 그리하여 정명학교는 설립 초기에 민족교육의 도장으로써 활발하게 운영되었는데, 끝내 운영난에 봉착하여 개교 3년 만인 1929년 10월에 폐교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19. 8. 7 대구복심법원)
- 영광군지(영광군지편찬위원회) 1049·1053면
- 동아일보(1921. 9. 7, 1923. 12. 13)
- 옥당골의 전통문화(영광군) 1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