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16, 17일에 의성군 안평면(安平面) 석탑동(石塔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기독교도인 강희석은 3·1운동의 소식을 접하면서 김복식(金福植)·정금동(丁今同)과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으는 한편 점곡면(點谷面)의 송내동교회(松內洞敎會) 조사(助事) 권수백(權秀伯) 등과 연대를 이루며 만세운동을 추진해 갔다. 이 때 이들은 안평면의 만세시위에 이어 점곡면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을 세웠으며,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5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3월 16일과 17일 양일 밤에 걸쳐 마을에 태극기를 게양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4. 7 대구지방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374·3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