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1931년 1월 임철호(林喆鎬)·박종암(朴鍾岩) 등과 남원청년동맹(南原靑年同盟) 운봉(雲峰) 지부를 조직하여 불경작동맹(不耕作同盟)과 소작료불납동맹(小作料不納同盟)을 결성하는 등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앞서 그는 청소년의 이발을 무료로 해준다는 것을 내세워서 운봉 이발계(理髮契)를 조직하고 이면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면서 항일의식을 고취해 갔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힘입어 남원청년동맹 운봉지부가 결성되었는데, 이들은 매월 15일 정기총회를 개최하면서 일제의 토지수탈에 대항하였다.
그런데 일제의 탄압으로 남원청년동맹 운봉지부의 활동이 부진하게 되자 운봉지부의 활동을 부흥시키기 위해 박종암·임철호 등과 함께 청소년들을 포섭하여 비밀리에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조직 개편을 단행하였다. 이 때 그는 박종래(朴宗來)와 함께 서무부·재무부 책임을 맡았다.
이후 그는 운봉면 일대에서 수십 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야학회를 개설하여 한국 농촌의 피폐는 일제 식민지 통치의 모순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제의 구축과 식민권력에 안주한 친일 지주와 자본가에 대한 배척을 역설하였다. 이렇듯 야학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던 중 일경에 발각되어 붙잡힌 그는 1933년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33. 5. 31. 대구복심법원)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