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되자,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확산되었다. 의병들은 일본군에 본격적으로 저항하거나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親日走狗輩)를 처단하는 활동을 통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의병투쟁이 전개되던 1908년 음력 9월에 김현규는 부하 60명을 이끌고 민창식 의진에 합류하였다. 같은 달 의병 20여 명과 충청남도 대흥군 원동면(遠東面)과 거변면(居邊面), 청양군 북하면(北下面)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8월 11일 공주지방재판소, 1909년 9월 17일 경성공소원에서 이른바 ‘강도’ 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재판소:1909. 8. 1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355~35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