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충청북도 충주 출신으로 1907년 10월 11일에 의병장 김상한(金商翰)의 부하로서 소모장(召募將)이 됐다. 정여선은 김상한으로부터 화승총(火繩銃) 1정(挺)과 탄약을 지급받아 휴대하고 12월 21일까지 충주·청풍(淸風)·단양(丹陽) 등 각 군을 순회하며 의병 동지 5명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충주군 덕산면(德山面) 영남(嶺南), 단양군 동면(東面) 색남(塞南) 등지에서 의병들과 함께 토벌대 순사 약 20명과 교전하는 전투를 전개했다. 그 과정에서 지역민들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며 활동하던 중에 1908년 3월 15일 청풍군(淸風郡) 원남면(遠南面) 수산리(水山里)에서 헌병에게 체포됐다.
정여선은 체포된지 1여 년이 지난 1909년 4월 2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 죄명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재판소:1909.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