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충청남도 예산에서 1919년 3월 3일 밤에 윤칠영(尹七榮)과 친우 4명이 “일본 기타 경성 방면에서는 유학생과 및 기타 학생들이 단결하여 성대하게 한국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오후 11시 30분경 예산 읍내 동쪽 산 위에서 ‘대한국독립만세(大韓國獨立萬歲)’를 외쳤다. 이를 시작으로 예산 읍내에서 독립만세 시위가 계획되었다.
3월 13일 오후 2시 대흥면(大興面)에서 대흥공립보통학교(大興公立普通學校) 전교생 300명이 대흥 장터로 나아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대흥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해 학생 3명을 체포하며 탄압하자 학생들은 해산했다. 3월 21일에도 예산 읍내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3월 31일 오후 2시경 예산 장날 예산리 예산시장에서 약 50~60명의 군중들이 운집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러한 예산 독립운동에 응봉면(鷹峯面) 주령리(朱令里)의 정대홍(丁大洪), 정순도(丁順道), 건지화리(乾芝化里)의 이덕칠(李德七), 노화리(蘆花里)의 이회원(李會元), 김치국(金致國) 등 10개 마을 주민들이 참가하여 12명이 예산헌병분대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 60~90도의 즉결처분을 받았다.
정대홍은 예산 지역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헌병에게 체포되어 예산헌병분대로 압송됐다. 1919년 4월 1일 헌병분대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 60도의 즉결처분을 받는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6)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7)(독립운동에 관한 건 제34보, 1919. 4. 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45~14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