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38년 3월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상점원·공장 공원·전차 차장 등의 직업에 종사했다. 1943년 4월경부터 경상북도(慶尙北道) 선산군(善山郡) 농회지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4년 8월 충청남도 조치원역과 천안역 사이의 북행열차에서 조선총독부의 강제 공출과 조선인 청년에 대한 징병 등을 비판하였다. 구체적으로 “태평양전쟁도 1944년 9월경에 이르기까지도 미국을 격멸시키지 못하면 일본은 승리가 예상되지 않는다” 등의 발언을 기차 승객들에게 언급했다.
1944년 9월에는 강제징병을 거부하였다. 같은 달 7일 만주 반석현(磐石縣)에서 20일까지 평양 제44부대에 입대하라는 현역병증서를 교부받았으나, 남행열차로 귀성하던 도중 대전역(大田驛)에서 하차하여 다시 만주로 도피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체포되어 1945년 4월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이른바 ‘조선임시보안령·육해군형법(陸海軍刑法)·병역법(兵役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1945. 4. 20)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