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11월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군(光州郡)에서 한일 학생 간의 충돌을 계기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전국의 학생들이 동조시위, 동맹휴학 등으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충청남도 예산군의 예산공립농업학교 학생들도 시위운동과 동맹휴학을 추진하였다. 1930년 예산공립농업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창희는 4학년의 유중근(柳重根), 3학년의 이만섭(李萬燮), 한만석(韓萬錫)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1월 24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예산 장날에 항일격문을 살포하고 만세시위를 실행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학우들을 규합하는 등 준비를 갖추어갔다. 그러나 1월 22일 이러한 계획이 발각되어 정창희를 비롯한 20여 명의 학생들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얼마 후 석방되었으나 이 일로 인해 퇴학 처분을 당하였다.
이후 예산청년회(禮山靑年會)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1931년 8월 29일 대동가극단(大同歌劇團)이 일본말로 친일적 공연을 하자 이에 항의하였다가 일시 체포되기도 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1. 24)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1. 24, 1. 28, 2. 5)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1. 25, 1931. 9. 4)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 8. 30)
- 광주항일학생사건자료(光州抗日學生事件資料)(조선총독부 경무국, 1979) 179면
- 학적부(學籍簿)(공주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