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경기도 화성군(華城郡) 호곡리(虎谷里) 강습소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1934년 만주로 건너가 철도 노동자로 종사하였다. 1935년 4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輯安縣)에서 조선혁명군의 권유를 받아 가입한 후, 정무원(政務院) 비서(祕書)로 활동하였다. 이후 조선혁명당 정치부 비서과장(祕書科長)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당시 조선혁명군에서 세력 규합을 위해 국내로 파견된 유광호(柳光浩)로부터 연락을 받고, 차종로(車宗路)·김용봉(金龍奉)·신태형(申泰亨)·전례호(全禮浩)·전대화(全大華) 등과 함께 군자금 3,000여원을 모집하였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유광호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자, 조선혁명군의 명령에 따라 국내에서 노동자와 지식인들의 세력을 규합하고 조직화하기 위해 1936년 10월 평안북도(平安北道) 의주군(義州郡) 청성진(淸城鎭)을 통해 국내로 진입하였다. 이후 신의주(新義州)를 거쳐 목적지인 평양(平壤)으로 향하던 중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37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과 강도(강도치사)’ 등을 이유로 무기징역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1939년 7월 24일 형무소 간수의 수형자 살해에 항의하고, 7월 25일부터 26일까지 ‘수형자의 의식주 및 위생설비 개선’ 등을 요구하며 옥중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하여 1940년 8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40. 8. 27)
- 동아일보(東亞日報)(1937. 7. 9, 12. 7)
- 조선일보(朝鮮日報)(1937. 7. 10, 12. 10)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1937. 3) 제10권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