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3월 14일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한영태(韓永泰)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주창학은 운집한 주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했다. 또한 장진군 신남면 고토리에 있는 헌병주재소로 가 만세시위를 벌였다. 주재소장 시마모토 신하치(島本新八)가 해산을 명령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체포된 노석규(魯錫奎)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 후 주창학은 주재소에 돌을 던지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행동을 하며 주재소장을 응징하다 체포됐다.
주창학은 1919년 6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함흥지방법원 이시카와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조사 자료(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9) Ⅰ 5, 111, 123, 175, 273, 284면
- 함흥지방법원 이시카와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조사 자료(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9) Ⅱ 11, 284, 322, 3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