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충청북도 진천군 만승면 광혜원리의 3.1운동은 1919년 4월 2일에 시작되었다. 나무 심기 공동 부역이 끝난 후 하산하던 주민들이 윤병한(尹炳漢)의 제의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어 만승면사무소(萬升面事務所)로 이동하여 오후 7시경 500~600명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은 면서기에게도 만세를 부를 것을 요구하였다. 면장과 면서기를 응징하고 돌을 던져 면사무소 창문 등을 부수었다.
이어서 신축 중인 광혜원헌병주재소(廣惠院憲兵駐在所)로 이동하여 문을 부수고 벽을 무너뜨렸다. 이에 헌병과 주둔 수비병들이 실탄을 발포하여 현장에서 4명이 사망하고 시위 군중도 해산하였다. 다음 날인 4월 3일은 장날이어서 군중들이 대규모로 운집할 것으로 예상한 광혜원헌병주재소 헌병들은 경계를 더욱 강화했다.
정오 무렵 음성군(陰城郡) 죽산(竹山) 방면에서 다수의 군중이 읍내로 들어오고 오후 3시에 이르러 약 1,000명의 군중들이 만승면사무소에 돌을 던지며 공격하였다. 이어 군중들은 헌병주재소로 몰려갔다. 이때 진천수비대가 출동하여 헌병과 함께 군중들에게 해산을 요구했다. 군중들은 이에 불응하고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저녁이 되자 헌병과 보병들이 군중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여 현장에서 박도철 등 4명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박도철의 모친도 아들의 죽음에 절규하며 저항하던 와중에 일본군에 의해 순국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삼일독동시(三一獨動時) 피살자 명부(내무부, 1952) 12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605~6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