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4월 7일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月也面) 낙영재(樂潁齋)의 청년 김기택(金箕澤) 등은 문장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추진하기로 했다. 문장 장날인 4월 8일 오후 5시경 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김기택은 긴 장대에 깃발을 매달아 장터로 달려갔으며, 이윤상(李潤尙) 등과 함께 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청년 10여 명은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장터에 있던 군중이 청년들의 선창을 따라 만세를 외쳤다.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며 문장헌병주재소로 행진하였다. 문장헌병주재소(文場憲兵駐在所)의 헌병은 발포하며 군중을 탄압하였다. 결국 주도자 등을 체포하고 군중을 6시경 해산시켰으나 장효섭·이윤상 등이 체포된 사람의 방환을 요구하며 저항하였다. 헌병은 만세운동의 형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함평 등 헌병에 지원을 요청해 주변 경계를 강화시켰다.
장태중은 4월 8일 문장 장터에서 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목포지청(木浦支廳) 검사분국(檢事分局)에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14)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