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정월 전라남도(全羅南道) 곡성군(谷城郡) 옥과면(玉果面) 이문리(里門里) 자택에서 고종황제(高宗皇帝)가 승하 소식을 접했다. 그는 “이제는 나라가 망하고 임금까지 돌아가셨으니 무엇을 바라리오.”라면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이후 집 후원(後園)에 단을 차려놓고 계속 통곡하였다.
고종의 인산일(因山日)인 1919년 3월 3일 설산에 올라가 북향사배(北向四拜)를 하고 내려와 집안의 선산에 가서 하직을 고하였다. 당시 친구에게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마음을 감추고 지금에 이른 것은 오직 우리 황제가 있었기 때문으로, 이제 활과 검만 남아 희망을 다시 회복할 수 없다.”고 했다 한다. 이후 계속 통곡하다가 3월 7일 집 후원의 단 아래에서 스스로 목과 배를 찔러 자진순국(自盡殉國)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기려수필(騎驢隨筆)(국사편찬위원회, 1955) 228~229면
- 내고장전통가꾸기(곡성군, 1981) 42~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