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신홍균은 1911년 가족을 데리고 장백현(長白縣) 17도구(17道溝) 왕가동(王哥洞)으로 이주한 뒤 장백현과 연길현 일대에서 원종교 및 대진단(大震團) 소속으로 활동했다. 원종교는 김중건(金中建)이 1913년에 창시한 종교로 인재 규합, 항일운동단체 조직, 투사양성 등을 목표로 했다. 김중건은 간도(間島)의 농촌을 근거지로 삼아 원종교를 통한 사회결사운동, 교육운동, 무장독립운동을 독자적으로 시행하고자 했다. 한편 대진단은 김중건이 1920년 중국 안도현(安圖縣)에서 2백여 명의 원종교도 청년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무장투쟁단체였다. 1924~25년 신홍균은 원종교 총법회 대정원장과 외무사장 등을 역임했고, 김중건이 체포됐을 때는 그를 대신해 대진단 단장을 맡았다.
1933년 4월 신홍균은 김중건의 유언에 따라 원종교도 500여 명을 이끌고 지청천(池靑天)의 한국독립군에 투신했다. 같은 해 6월 신홍균은 대전자령전투(大甸子嶺戰鬪)에 참가했다. 대전자령전투는 지청천의 한국독립군이 중국군과 연합해 대전자령을 지나는 일본군을 전멸시킨 전투이다. 한중연합군은 4시간의 격전 끝에 일본군 군복 3,000벌, 군수품 200여 마차, 대포 3문, 박격포 10문, 소총 1,500정, 담요 300장 등 막대한 전리품을 노획했다. 특히 신홍균은 한의업을 가업으로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본인도 한의사였기 때문에 대전자령전투에서 군의(軍醫)로서 활약했다. 또한 숲속에 자생하는 검은 버섯을 대용식품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 전투에 나선 독립군 장병들의 굶주림을 해결했다.
이후 한국독립군 일부는 중국 관내로 이동했다. 이때 신홍균은 관내로 가지 않은 부대들을 인솔해 영안(寧安), 목릉(穆陵), 밀산(密山) 등지의 산림지대로 이동시키고 1930년대 후반까지 항일활동을 지속했다. 또한 이 시기 신홍균은 중조반일회(中朝反日會)와 연계해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독서회’ 등을 개최함으로써 항일사상을 선전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만주(在滿洲)의 부(部)(31)
- 중앙일보(中央日報)(1975. 4. 16, 4. 26,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