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41년 4월 고교쿠샤공업학교에 입학하고 도쿄시 수도국(水道局)에서 근무하면서 민족적 차별을 경험하였다. 이후 이러한 차별을 타파하고 한국인의 참된 자유와 행복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응하여 동지적 단결과 독립을 위한 봉기가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항일단체 조직을 계획하였다.
1944년 5월 초부터는 본격적으로 항일단체 조직을 위해 하영길(河永吉)⋅김용산(金用山) 등의 동지를 모집하고 수차례 회합을 주선하였다. 아울러 일제의 패전을 예견하여 향후 활동 내용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요컨대 회합한 동지들은 일제의 패전 후 한국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인 만큼 “문학·철학·사상 등 모든 분야를 부지런히 배우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 실력 함양에 노력하는 한편 단결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며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44년 6월 19일 일본 경시청에 의해 ‘사상분자와 그룹을 결집’한다는 명목으로 검거되었다. 8월 21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도쿄형사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국되었다. 1945년 2월에는 도쿄경시청의 특별요시찰인 약식명부에 편입되는 등 지속적인 감시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대만(朝鮮臺灣) 특별요시찰인(特別要視察人) 약식명부(略式名簿)(국가보훈처, 2016)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박경식, 1976) 제5권
- 소화특고탄압사(昭和特高彈壓史)(태평출판사, 1976) 제8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