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63555
성명
한자 許璟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18 훈격 대통령표창
1937년 7월 충남(忠南) 홍성(洪城)에서 ‘조선독립’(朝鮮獨立)신사회(新社會) 건설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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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37년 7월 고향인 홍성군 고도면(高道面)에서, 일본 교토(京都)에 체재할 당시부터 친교가 있던 같은 마을의 송길한(宋吉漢)과 함께 조선독립과 신사회 건설에 대해 협의하고 함께 활동하기로 약속하였다. 같은 고도면 출신의 송길한은 1933년 일본으로 유학해 활동하다가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기 위해 1937년 6월 18일 귀향했으나, 그해 7월에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일어나 결국 중국행을 포기하고 홍성에서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운동 전개를 모색 중이었다. 이에 송길한은 당시 고도면에 있는 신안서당(新安書堂) 교사 박영달(朴英達) 등을 동지로 규합하여, 같은 해 8월경부터 서당의 생도들을 중심으로 창가(唱歌)나 옛날이야기 등을 통해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 7월 23일경 송길한이 방문했을 때 허경은 식민지 조선의 사회제도의 모순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러한 모순인 사회 상태를 타파하여 진실로 자유 평등한 인류애(人類愛)의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위해 활동해야 함은 우리 청년의 책무”라고 합의하였다. 같은 해 8월 23일과 9월 상순경에도 송길한과 회합하여 조선의 독립 및 신사회 실현을 위해 함께 제휴하여 활동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9월 중순경 송길한은 국내 북부지역과 만주를 돌며 동지를 규합하고, 허경은 서울에서 중학교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장차 홍성으로 돌아와 조선독립과 신사회 실현에 매진하기로 약속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38년 5월경 송길한 등 6명과 함께 홍성경찰서(洪城警察署)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7월 16일 대전지방법원(大田地方法院) 홍성지청(洪城支廳) 검사분국(檢事分局)에서 박영달과 송길한만 예심에 회부되고, 허경 등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1938년)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검사국 사상부, 1939) 제21호 251~257면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송길한)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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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허경 - 충남 서산(瑞山) -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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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위패)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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