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9년 3월 함남 원산군(元山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원산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2월 20일경부터 정춘수(鄭春洙)ㆍ이승훈(李昇薰)ㆍ박희도(朴熙道)ㆍ오화영(吳華英) 등이 계획하였다. 날짜가 3월 1일로 정해지고, 시위 주도는 기독교ㆍ천도교ㆍ불교 등 각 종교 단체가 맡기로 하였다.
함태영은 학교 교사이자 기독교인으로, 2월 28일 밤 진성여학교(進誠女學校)에서 정춘수ㆍ이가순(李可順)ㆍ이진구(李鎭九)ㆍ이순영(李順榮)ㆍ차광은(車光恩 또는 車廣恩)ㆍ차용운(車用運) 등 14명과 모임을 갖고, 3월 1일에 만세시위를 결행하기로 하고 태극기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각 교회에서 종이 울리자, 함태영을 비롯한 주도 인물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며 장촌동(場村洞) 시장으로 행진하였다. 군중이 운집하자 일제 군경은 공포를 쏘기 시작했다. 일부는 흩어지고 일부는 역 앞으로 가서 시위를 계속하다가 저녁 6시경 해산하였다. 이날은 원산 장날이라 참가자가 2,000여 명이나 되었으며, 현장에서 50명이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9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 원산지청(元山支廳)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5월 26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기각되었다. 1919년 7월 3일 고등법원(高等法院)에서 상고도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1년 1월 3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19. 5. 26)
- 判決文(高等法院 : 1919. 7. 3)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981~983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669~673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291~2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