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충남 공주(公州) 출신으로 1895년 9월 충남 유성(儒城)에서 거의(擧義)한 문석봉의진(文錫鳳義陣)의 선봉장(先鋒將)으로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문석봉은 경북 현풍(玄風) 사람으로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최초의 의병봉기를 이끈 의병장이다. 문석봉은 1895년 2월 공주부(公州府) 영장(營將)에 재직하면서 일제를 몰아낼 계획으로 관병 400여 명을 훈련시키다 붙잡혀 4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동년 음력 9월 18일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 만행에 항거하여 충남 대덕군(大德郡) 유성(儒城)에서 국수보복(國讐報復)을 기치로 창의, 회덕(懷德)으로 진군하여 군사를 모은 후 그 곳 관아(官衙)를 공격하였다. 문석봉은 무장을 갖추고 진용을 정비하여 선봉장(先鋒將)에 김문주, 중군장(中軍將) 오형덕(吳亨德)을 임명하고 진산(鎭山)을 거쳐 공주로 진군하였다. 그러나 1895년 음력 10월 28일 일군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의병진은 해산되고 말았다.문석봉은 다시 중군장 오형덕 등과 함께 경북 고령(高靈), 경남 초계(草溪) 등지에서 재기를 준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대구부에 압송되어 심문을 받던 중, 1896년 봄 오형덕과 함께 파옥하여 탈출, 강원도 원주에서 다시 의병을 모색던 중 병을 얻어 작고하였다.
김문주는 동학농민군의 봉기 때 문석봉과 함께 소모군으로 참여하여 참모사(參謀士)를 역임하였고, 1895년 2월 1차의병 준비 때도 공모하여 체포된 바 있었다. 1895년 9월 문석봉의진에 참여하여 선봉장으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義山遺稿(文錫鳳, 1934) 卷之四·朝鮮末 文錫鳳의 儒城義兵(김상기, 歷史學報??134·135합집, 1992) 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