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6년 10월 하순경 경상남도(慶尙南道) 부산부(釜山府)의 부산제2상업학교를 다녔다. 김귀문(金貴文) 등 전라남도 출신의 학생들과 함께 호남학우회(湖南學友會)를 조직했다. 최풍룡 등은 사회주의 사상을 학습하고 회지(會誌)를 발행하여 일본의 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했다.
1928년 4월경 최풍룡은 고향인 전라남도 여수군 삼산면 동도리(東島里)에서 동도리소년회(東島里少年會)의 기관지로 『망양봉(望洋峯)』을 인쇄하여 회원들에게 배포했다.
최풍룡은 1930년 7~8월경 여수의 거문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른바 ‘호남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여수경찰서(麗水警察署)에 체포되었다. 1930년 8월 말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및 ‘불경죄(不敬罪)’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으로 송치되었다. 1931년 6월 20일 예심(豫審)이 종결되면서 면소(免訴) 처분을 받고 21일에 출옥했다. 1937년 4월 14일에 순국(殉國)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9. 8.)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