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이철익은 경남 의령군(宜寧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태(笞)
90(度)를 받았다.
의령읍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4일 의령읍 장날에 거행되었다. 의령읍 동동
(東洞)에 사는 구여순(具汝淳)은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갖고 고향으로 돌아와
만세 시위를 위한 동지 규합에 들어갔다. 3월 14일 아침부터 모여든 군중으로
장터는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오후 1시 구여순은 임시 가설된 장 복판 단상에
올라 "일제의 기반을 벗어나 조국의 독립을 쟁취할 때는 왔다. 이 기회를 놓치
지 말자." 라고 군중에게 열띤 호소를 하고, 남인섭(南仁燮)도 나라 없는 백성들
의 서러움을 눈물로 호소하였다. 이어서 군중들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
누어 주고, 주동 인물들은 태극기를 높이 들고 일제히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때 의령공립보통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약 300명의 군중이 결합하여 군
중은 약 3,000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시장을 누비고 읍내를 일주하면서 만세
시위를 전개한 후 경찰서 앞에 이르러 만세를 부르고 산회하였다. 다음 날인 15
일 의령향교(宜寧鄕校) 앞으로 다시 모인 1,500명의 군중은 부슬비가 내리는 가
운데 유유히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은 경찰서와 군청 앞에 이르러 더욱
큰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기세를 올렸다. 의령읍의 만세시위는 15일에 3
회 일어난 데 이어 16일에도 계속되었으나 진주로부터 일본군의 응원부대가 와
이들의 탄압으로 시위는 더 확대되지 못했다.
시위 후 체포된 이철익은 5월 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태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307~3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