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2월 서울에서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재학중 이종림 (李宗林) 등의 지도를 받아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음.
1930년 10월 신간회 경성지회 가입, 1931년 마산재외 (在外) 유학생회 경성 (京城) 위원으로 조선어학생운동, 문맹퇴치운동 등의 활동을 함.
1935년부터 서울에서이상선 (李相鮮)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재건, 산업별 적색노동조합 등의 결사 조직에 대해 협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10월(미결통산 전부 산입)을 받음.
1939년 6월 일본에서일본공산청년동맹 (日本共産靑年同盟) 에서 활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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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10월 신간회 경성지회 가입, 1931년 마산
1935년부터 서울에서
1939년 6월 일본에서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2월 서울에서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이종림(李宗林) 등의 지도를 받아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독서회를 통해 신사상(新思想) 연구를 하다가 체포되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1930년 10월 신간회 경성지회 제16회 상무집행위원회를 통해 경성지회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31년 8월 마산 재외 유학생회 경성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조선어학생운동, 문맹퇴치운동 등을 전개했다. 일본에 유학 가서 일본대학(日本大學) 전문부 상과(商科)에 입학하였다. 1932년 일본에서 일본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5년부터 서울에서 이상선(李相鮮)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 재건, 산업별 적색노동조합 등의 결사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활동하였다. 관련 운동가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이는 ‘조공재건 부산그룹 사건’으로 알려졌다. 1937년 12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8. 31, 9. 3, 1931. 8. 9, 1936. 12. 13, 1937. 3. 5)
- 매일신보(每日申報)(1935. 8. 25, 12. 30)
- 동아일보(東亞日報)(1935.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