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사진기사(寫眞技士)이자 영화감독으로서 미국과 중국, 국내를 오가며 활동하였다. 1930년대 중반 ‘이재유(李載裕) 그룹’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의 일환인 적색구원회(赤色救援會) 관련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 1937년 3월 21일 만주에 출장을 온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 형사대에 체포되었다. 당시 ‘경성 학생RS연합회 사건’의 지도자 이평산(李平山), ‘이재유 그룹’의 이종희(李鍾嬉) 등도 함께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일본 당국은 이 사건을 과거 RS협의회에 관련된 ‘문춘학(文春學) 일파의 적색구원사건’이라고 보았다. 7월 15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1944년 8월 10일 서울 경운동(慶雲洞) 삼광한의원(三光韓醫院)에서 여운형(呂運亨)·조동호(趙東祜)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선건국동맹(朝鮮建國同盟)을 조직하였다. 10월경 외무부(外務部)에서 활동했다. 1945년 5월 말경 인천부(仁川府) 소사읍(素砂邑)의 군수품(軍需品) 공장에서 비밀 공장지도를 빼내서 여운형에게 전달하였다. 8월 4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한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일보(朝鮮日報)(1937. 5. 25)
- 여운형선생투쟁사(呂運亨先生鬪爭史)(이만규, 1946) 168~171, 174, 177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