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남궁석은 1940년 5월 전북 정읍에서 김언수(金彦洙), 금광간일(金光干日)이 창시한 신종교에 입교하여 종교 활동을 하였다. 이들의 신종교는 최수운(崔水雲) 교조로 있는 시천교(侍天敎)와 강증산(姜甑山)이 교조로 있는 증산교(甑山敎)의 뜻을 기초로 하여 유, 불, 선의 3교를 통합한 것으로 신통력을 가진 도통군자가 되기 위해 수양해야 하고, 강증산의 유저대순전경(遺著大巡典經)에 기초하여 '3재가 발생하여 부자, 지혜 있는 자, 권력계급은 대부분 죽어 없어지게 되며,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은 멸망이 빨라지고 그때 도통군자 1만 2천명은 그 신통력에 의해 생존하고 조선은 독립을 얻게 되고 장래에 영구한 조선건국의 대 공로자로서 우대받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12,000명의 신통력 있는 도통군자에 의해 조선은 독립을 얻게 될 것이며, 도통군자는 조선건국의 대공로자로 우대받을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종교적 수양과 교세확장에 주력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남궁석은 이 일로 인해 1942년 2월 17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별집 3권 286면
- 平山永和 判決文(경성지방법원:1942.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