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전남 화순(和順) 출신으로 자는 향원(響遠), 호는 지재(志齋)이다. 1907년 창의
한 양회일의진(梁會一義陣)에 참여하여 1908년 7월 일본군과 교전 중 체포되어
옥중 순국하였다.
1907년 4월 말 양회일이 주도한 쌍산의소(雙山義所)는 능주(綾州)의 관아와 일
본군 주재소를 공격하였고, 이어서 화순(和順)의 관아와 분파소를 공격하였다.이들의 목표는 우선 광주(光州)를 공격하여 전라도 지방에서 일본 세력을 몰아
내고, 나아가 북상하여 서울의 일본 세력과 친일파를 구축함으로써 국권을 회
복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쌍산의소의 의병들은 광주를 공격하기 위해 동복(同
福)에서 진을 치고 있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았다. 이리하여 양회일을 비롯한
의병 6명이 체포되었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윤종섭은 양회일의진이 1907년 4월 22일부터 능주·화순 등지의 군아(郡衙)와
주재소 및 분파소를 공격하는 데 참가하였다. 1908년 7월 10일 광주(光州)를 공
격하기 위해 동복에서 진을 치고 있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윤종섭은 양회
일 등과 함께 모두 6명이 체포되었다. 윤종섭은 양회일 등과 옥중에서 단식 투
쟁을 벌이다가 7일만에 혀를 끊어 말을 하지 않으니 결국 총살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國譯 杏史實記(조선대학교 고전연구원, 2010) 부록 149~151, 154~173면
- 尹鍾燮公褒忠彰義發起文(癸亥, 1923)
- 和順郡誌(和順郡誌編纂委員會, 1980) 173면
- 和順郡史(和順郡史編纂委員會, 1993) 240면
- 坡平尹氏世譜(1959) 下卷 130면
- 湖南節義史(金正祥, 1961) 476~47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