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정인회는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1896년 1월 춘천에서 창의한 이소응의진(李昭應義陣, 일명 春川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춘천의진은 1896년 1월 18일 춘천유생 정인회가 군인출신 성익현(成益鉉)과 상인 박현성(朴玄成)을 규합하여 포군 400여 명과 함께 봉기하여 춘천 강촌출신 습재(習齋) 이소응(李昭應)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여 결성한 의병진이다.
정인회는 당시 27세의 유생으로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과 단발령이 포고되자 진위대(鎭衛隊) 춘천분견소(春川分遣所)의 군인 중 신망이 두터운 성익현과 밀통하고 상인 중에서 용맹과 담력이 있는 박현성과 기맥을 통하여 부민(府民)에게 통문을 돌리고 의병봉기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특히 성익현은 진위대 춘천분견소의 일부 군인과 포수 약 400명을 의병대열에 참가시켜 의병부대의 세력을 강화하였다. 1896년 1월 18일 창의한 춘천의병은 춘천관찰부를 습격하여 의병의 본영으로 삼았다. 그리고 전임 춘천유수 민두호(閔斗鎬)의 생사당(生祠堂)을 불태우고, 그의 아들 민영준(敏泳駿)의 향제(鄕第)에 난입하여 집기를 불태웠다. 그리고 정인회 등은 이소응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각지에 격문을 발송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권 1970
- 車相瓚, 丙申兵亂 關東倡義兵亂秘話(開闢 創刊號, 1934)
- 昭義新編(1981) 권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