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고영찬은 1943년 4월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9회생 동기인 이정선(李貞善)의 주도로 조직된 명성회(明星會)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명성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장 조소앙(趙素昻)의 공작원 이회술(李會述)의 지령을 받아 안동농림학교 9회생을 중심으로 안동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였다. 이 단체는 총 19회에 걸쳐 임시정부 동정 및 연합군 전황을 수록한 기관지 새벽을 비밀리에 출판하여 경북 일대의 학생과 지식층의 항일사상을 고취하였고, 정세가 유리할 때를 기다려 일제의 공공시설을 무력으로 파괴하고 일본 고관들을 처단할 것 등을 계획하였다.
고영찬은 1944년 11월, 안동농림학교 8회생인 윤동일(尹東一), 권영동(權寧東), 갈정호(葛正虎) 등이 주권을 탈환하고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고자 조직한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과 제휴하여 1945년 2월 17일에 무력봉기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거사 전 인원을 배치하고, 야음을 이용해 교통, 통신을 차단하며, 안동경찰서와 헌병대 파견대를 공격하고, 다음으로 의성까지 진출해 일본군 제24부대와 일전을 각오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단원 일부가 발각되어 1945년 3월 10일로 연기하였으나, 또다시 단원 대부분이 일본 경찰에 체포됨으로써 실패하고 말았다. 고영찬도 이때 체포되어 약 5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광복 이후 1945년 8월 16일 풀려났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安東農林 60年史(安東農林高等學校, 1993) 72~75면
- 안동사람들의 항일투쟁(김희곤, 2007) 498~520면
- 安東農林學生抗日略傳(安東農林高等學校同窓會, 1978) 15~23면
- 刑事事件簿(朝鮮總督府裁判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