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유정진은 1929년 3월경 이민형(李民衡), 이병로(李丙老), 노사석(盧四石) 등과 함께 중앙청년동맹(中央靑年同盟)을 결성하고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5월 이를 기반으로 조선공산당을 재건할 목적으로 조선혁명자동맹(朝鮮革命者同盟)을 결성하여 조직부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1929년 말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아 집회 금지, 관계자 검속 등이 속출하여 맹원이 해산하고 중앙청년동맹은 전혀 유명무실한 상태로 떨어졌고, 중앙청년동맹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이민형의 사망으로 사실상 해체단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1932년 12월 서울에서 이복기(李福基) 등과 함께 조선혁명자동맹의 후신인 경성적색노동조합 조직준비위원회(京城赤色勞動組合 組織準備委員會)를 결성하고 조직부 부원으로 활동하다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日報(1933. 1. 12, 1933. 10. 8)
- 豫審終結決定(경성지방법원:1933. 10. 7)
- 한국민족해방운동자료집(김경일 편) 제7권 1, 3면
- 東亞日報(1933. 1. 7)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5권 391면
- 思想에 關한 情報(東大門警察署長:1933.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