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한일의정서를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해갔다. 같은 해 6월 일제가 일본인에게 50년 동안 전국의 황무지 개척권을 위임하라고 요구하자 전국에서 반대 여론이 일어났다.
이때 송홍은 황무지개척권 반대투쟁에 참여하여 9월 8일부터 홍종영(洪鍾永)‧이범창(李範昌) 등과 덕수궁 앞에서 상소운동을 벌이다가 일본 헌병에 의하여 구금되었다. 1905년 5월에 입헌정치를 연구하고 국민을 계몽하기 위한 계몽운동 단체인 헌정연구회(憲政硏究會)의 평의원(評議員)에 선임되었다.
1909년부터 광주보통학교 부훈도에 서임되어 학생들을 교육하였다. 1922년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 교유를 거쳐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교유로 재직하였다. 1930년 2월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하여 제자들이 실형을 선고받자 이에 항의하여 사직하였다. 1956년에 제자들이 광주제일고등학교에 그의 동상을 건립하여 민족정신을 기렸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황성신문(皇城新聞)(1904. 9. 9, 1905. 5. 25)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2. 17, 2. 22)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2. 22, 2. 24)
- 주한일본공사관기록(국사편찬위원회, 1998) 제24권 90면
-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직원록(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조선총독부, 1910~1929)
- 광주학생독립운동사(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1974) 300면
- 운인공행장(雲人公行狀)(광주일고동창회장,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