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36년 전남 무안군(務安郡) 지도면(智島面)에서 김칠성(金七星) 등과 함께 비밀결사를 결성하여 조선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위해 청년운동과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김한주는 동년 6월 15일 동지들과 함께 동면(同面) 내양리(內楊里) 소재 간척공사장 광장에 모여, 지도농민조합원(智島農民組合員)이 되어 사회운동을 전개할 청년투사 양성기관인 비밀결사 지도청년단(智島靑年團)을 조직하였다. 담당 부서를 정하고 강령(2항목), 행동강령(4항목), 규약(9항목), 운동방침(14항목) 등을 협의 결정하였다. 동년 8월 1일 동리(同里) 적동서당(笛洞書堂)에서 다시 모여 담당부서를 오르그 김칠성, 책임 황진연(黃珍淵), 연락부 김한주, 출판부 박기호(朴基豪), 농민부 김재용(金在鎔), 청년부 김정국(金正局), 교양부 김종철(金鍾哲), 소년부 김한룡(金漢龍)으로 결정하였다. 이후 조직을 전환하여 지도농민조합건설위원회(智島農民組合建設委員會)를 결성하였다.
1936년 7월 28일 김한주는 김칠성 등과 함께 반전(反戰)데이에 전단을 동지에게 배포하기로 하고, 김칠성의 집에서 제국주의 전쟁 반대 등을 담은 문서 10부를 작성하여 각 단원들에게 배부하였다. 또 동년 11월 7일 러시아혁명기념일을 맞이하여 ‘러시아혁명기념일에 즈음하여 공장·농촌·광산에서 혁명기념투쟁을 궐기하자’라는 격문을 작성하여 동지들에게 배부하였다. 동월 10일 동지들과 회합하여 지도농민조합건설위원회의 부서를 책임 김재용, 연락부 김한주, 출판부 김대동(金大童), 서무부 김정국, 선전부 주길동(朱吉桐), 쟁의부 나필환(羅弼煥), 재정부 김종철로 변경하였다. 부서 변경 후 결사원모집반 조직, 선전방침, 기관지발행, 각종 쟁의 지도 등을 협의하였다. 동년 11월 말경 김한주는 김재용의 지시로 1936년 12월 1일경부터 1937년 4월 15일까지 전후 5회에 걸쳐 기관지 ‘농민(農民)’을 발행하였는데, 이때 그는 원고 취합과 배포를 담당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김한주는 일경에 체포되어 1940년 2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木浦支廳:1940. 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