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2월 서울 낙원동에서 중앙여자청년동맹 (中央女子靑年同盟) 을 조직했으며, 1928년 7월 근우회 (槿友會) 중앙집행위원 (中央執行委員) 으로 활동하였고, 동년 (同年) 10월 러시아로 건너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수학 후 국내를 수차례 오가며 활동하다가 1933년 5월부터 함남 (咸南) 흥남 (興南) , 함흥 (咸興) , 원산 (元山) 등을 중심으로 태평양노동조합운동과 조공재건운동에 참가하다 1935년 봄에 체포되어 징역 3년 6월(미결구류 (未決拘留) 50일 통산 (通算) )을 받고 1939년 7월 17일 출옥 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 출옥(出獄) :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옴.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김필수는 1926년 12월 5일 서울 낙원동에서 여성들의 대중적 교양과 조직적 훈련을 목적으로 중앙여자청년동맹(中央女子靑年同盟)을 조직하였다. 같은 해 조선공산주의청년회(朝鮮共産主義靑年會)에 가입하여 독서회와 웅변모임 등을 조직하였으며, 이 모임을 통해 청년 특히 여성 청년들에게 항일민족독립에 관한 선전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28년 3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학생부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동년 7월 근우회(槿友會) 중앙집행위원(中央執行委員)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10월 러시아로 건너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1932년 5월 대학 졸업 후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우제르나 휴양소에서 국제노동운동에 대한 문제와 지하공작에 관계되는 기술과 지식을 배웠다. 그해 9월 국제직업동맹 중앙본부로부터 조선의 함흥과 흥남지구에서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라는 비밀임무를 맡고 1933년 5월부터 함경남도 흥남(興南),함흥(咸興),원산(元山) 등을 중심으로 태평양노동조합운동과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을 전개하였다.
김필수는 1935년 봄 흥남경찰서에 체포되어 1936년 3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京鍾警高秘 第8245號, 槿友會 中央委員會에 關한 件(1928. 7. 17) 사상문제에 관한 조사서류(국사편찬위원회) 제4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思想彙報 第9號(朝鮮總督府 高等法院 檢事局 思想部, 1936. 11) 18면
- 東亞日報(1935. 12. 25, 1936. 3. 8)
- ?代中國朝鮮族女杰(?代中國朝鮮族女杰編委員會 編, 1992) 15~21면
- 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 성대경 엮음, 1996) 1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