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이봉학은 충남 예산 출신의 유생으로 을미사변과 단발령 공포를 계기로 봉기하였던 홍주의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895년 12월 1일 창의하였던 홍주의병의 발단은 동년 3월 29일 내려진 변복령(變服令)에서 시작되었다. 즉 변복령에 반대한 유생 안창식(安昌植)이 의병 봉기를 계획하였으나 실행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 후 동년 5월 22일 이봉학은 박창로(朴昌魯)·안창식(安昌植) 등의 재야 유생들과 거의를 추진하였고, 동년 8월 20일 을미사변이 발발하자 의병 봉기에 합의하고 군사 모집과 무기 수집 등 구체적인 활동 계획도 세웠다. 이어서 동년 11월 15일 단발령이 공포되자 화성에 있는 이인영의 집에서 유생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향회(鄕會)를 열어 무장 봉기를 결의하니 180여 명의 의병이 집결하였다. 이들은 홍주관찰사 이승우(李勝宇)에게 의병봉기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였다. 12월 1일 이봉학은 정산과 청양의 유생 이세영(李世永)·김정하(金正河) 등과 함께 수백 명의 의병을 이끌고 홍주성에 들어갔으며, 이튿날 박창로와 청양 선비 이창서(李彰緖)도 수백 명의 의병을 이끌고 홍주성으로 집결하였다. 지방 유생들이 의병 봉기에 나서자 김복한(金福漢)·이설(李偰)·홍건(洪楗) 등의 전직 고관들도 합세하였으며, 홍주관찰사 이승우도 의병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마침내 12월 3일 김복한을 추대하여 창의대장으로 삼았다. 그러나 12월 4일 관찰사 이승우의 배반으로 홍주의병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봉학은 이와 같은 홍주의병의 결성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창의에 즈음하여 의병을 모집해서 홍주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청양군수 정인희(鄭寅羲)와 함께 공주 공격을 담당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騎驢隨筆(宋相燾, 1955) 48~49면
- 洪陽紀事(林翰周, 1958)
- 艮湖日記(安昌植, 1894)
- 葵堂日記(安炳瓚, 1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