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이상모는 1931년 경남 고성군에서 고성농민조합 간부로 활동하면서, 이진하(李鎭河)·권순학(權淳學)·이효건(李孝律)·박우상수(朴又尙守)와 함께 대하면 송계리, 영현면 봉발리에서 조합원을 모집하였다. 이때 그는 여러 차례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농회비·축산조합비 등은 악세(惡稅)이므로 납부할 필요가 없고, 보통학교는 유산자의 자제를 교육하는 곳이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야학교를 세워 자제를 교육하여야 하며 현재의 정치는 유산자의 이익만을 계획하고 있으므로 무산자의 영구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일치단결하여야 한다”는 연설을 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을 비판하였다. 이로 인해 이상모는 경찰에 체포되어 1932년 6월 30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6월(미결구류 120일 통산)을 받고 1932년 9월 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31. 11. 17, 12. 2)
- 朝鮮日報(1931. 11. 21, 12. 3)
- 高等警察關係摘錄(慶尙南道警察部, 1936년) 86면
- 固城郡誌(固城郡誌編纂委員會, 1995년) 4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