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이금복은 1925년 9월 경남 고성군 하일면 공립보통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17세(1928년경)에 박대영(朴大榮)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1932년 6월경 ‘삼천포독서회사건’으로 도피 중이었다. 이때 남편의 동생 박대홍(朴大鴻)의 권유로 「별의 나라」·「집단(集團)」 등 사상 서적을 읽고, 신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1934년 8월경, 부산에 와서 목도조선법랑철기주식회사(牧島朝鮮琺瑯鐵器株式會社)에 여공으로 취직하였다. 이때 정충조(鄭忠朝)의 권유로 동지 박보홍(朴寶洪)·이춘근(李春根)과 함께 정호영(鄭鎬永)의 검거 이후 분산된 적색노동조합을 재조직하기 위해 부산지방의 동지를 규합하는 등 실천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이금복은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었으나, 1935년 3월 26일 부산지방법원 검사국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그 후 이금복은 1938년 삼천포를 중심으로 적색농민조합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또 다시 체포되었다.
1939년 8월 3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당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麗水社會科學硏究會, 麗水赤色勞動組合準備會, 麗水靑年前衛同盟, 讀書會 등 조직사건(思想彙報, 제8호 조선총독부, 1936)
- 한국근현대지역운동사(역사문제연구소, 1993년) ⅰ권 158, 160면
- 朝鮮中央日報(1936. 2. 8)
- 東亞日報(1939. 8. 26·9. 3)
- 高等警察關係摘錄(慶尙南道警察部, 1936년) 113면
- 日帝下社會運動史資料叢書(한국역사연구회, 1999) 12집 248~359면
- 일제하 농민조합운동 연구(지수걸, 1993년) 4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