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경남 진주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28년 7월 창립된 진주청년동맹에서 활동하였다.
1929년 경남 진주에서 신간회 진주지회에서 상무집행위원로 활동하였고, 1930년 9월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가담하여 진주야체이카의 회원이 되었다. 11월 진주청년동맹 검사위원, 1931년 4월 진주농민조합 청년부 위원이 되었다. 그 해 5월경 ‘조공재건설준비위 사건’으로 검거되었다.
빈태문은 1934년 3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 720일 통산)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 1934년 3월 2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中央日報(1934. 3. 17)
- 신간회연구(이균영, 1993) 595면
- 韓國靑年運動史(선우기성, 1973) 396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10권 597면
- 東亞日報(1931. 6. 1·6. 12, 1934. 3. 17)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4권 3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