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필상은 1939년 3월 17일 서울 방산(芳山) 공립국민학교 6학년 졸업 후, 이듬해 3월 29일 일본으로 건너가 4월 10일 동경준대상업학교(東京駿臺商業學校)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42년 9월 1일 3학년 재학 중 학교를 그만두고 국내로 돌아왔다. 11월 20일경 서울 조선방송협회 사업부 보수과(保修課) 기술원 견습으로 들어가 방송무선전화 수신기의 수리와 검사 등의 업무에 종사하였다.
이후 개인적으로 몇 차례 무선단파수신기를 제작하려고 시도한 끝에 1943년 1월 마침내 완성하여 친구 조국환(趙國煥)·장영목(張英睦)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송출되는 태평양전쟁 관련 방송을 청취하였다. 김필상은 “일본의 전세가 불리하여 패전하게 될 것이며, 조선은 독립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변에 알렸다. 이로 인해 1943년 3월경 경기도 경찰부에서 취조를 받았고, 5월 11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넘겨졌다. 7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이 종결되어 12월 30일 징역 6월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事件送致書(京畿道警察部長→京城地方法院 檢事局:1943. 5. 12)
- 豫審決定書(京城地方法院 豫審掛:1943. 7. 27)
- 公判調書 第1回·第2回(京城地方法院:1943. 12. 24·12. 30)
- 단파방송 연락운동-日帝下 京城放送局-(兪炳殷, kbs文化事業團, 1991) 247~248, 2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