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황응도는 1920년 12월 경남 고성군 고성면에서 조국독립운동의 사상을 고취시키고자 청년들을 중심으로 일심회(一心會)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920년 12월 28일 일본인을 몰아내고 독립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내용의 취지서를 작성하여 1921년 1월 3일 고성면 교회당에서 일심회원 약 18명에게 취지서를 설명했다. 이 사건으로 황응도는 체포되어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성에서 고성 청년단, 신간회 고성지회, 고성농민조합 등에서 활동하였다. 1924년 10월 5일, 고성청년단은 창립기념축하식에서 교육을 강조하는 강연을 하고 1926년 11월 20일, 고성청년동맹 창립 1주년을 기념식에서 유산계급의 향락기관인 예기조합(藝妓組合)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였다.
1927년 12월 25일 신간회 고성지회 간사로 고성공립보통학교 학생 이용진(李龍振)이 일본인 소학교 학생들에게 맞아 죽는 사건을 조사하다가 신간회 고성지회 회장 천두상(千斗上)과 함께 구금되었다. 1928년 1월 25일 긴급 간사회의에서는 2월 15일의 창립기념일 행사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때 전단을 살포하고 기념식과 기념강연을 하기로 결정 연사는 황응도를 포함하여 김철동(金鐵同)·황판석(黃板石)·천두필(千斗必)·박맹룡(朴孟龍) 등 5명을 선정하고 준비사무까지 일임하기로 하였다. 3월 17일 고성청년동맹 고성지부 주최로 열린 고성 사회단체 합동위원회에 고성농민조합측 대표로 참가하였다. 1930년 4월 12일 동아일보 고성지국장으로 경남기자대회에서 참석하여 선거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고 고성농민조합의 5·1 메이데이 기념식 준비위원이 되었다. 이후 1933년 11월 조선공산당 재건동맹사건과 관련하여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55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307면
- 高等警察關係年表(朝鮮總督府 警務局, 1929) 58면
- 朝鮮共産黨再建同盟事件 發覺에 관한 件(1934. 2. 7) 思想에 관한 情報(7)
- 東亞日報(1926. 11. 26, 1928. 1. 30)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21. 4. 30)
- 時代日報(1924. 10. 2·10, 1925. 6. 2)
- 中外日報(1928. 1. 8·29, 2. 6, 3. 24, 4. 15·25)